돌아온 영감
Single Channel FHD Video, Color, Sound, 16min 30sec, Archive, 2020
조부 사진,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하의리, 비디오 스틸, 2020
김순남(조모) 인터뷰,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하의리 비디오 스틸, 2020
조부의 '한국전쟁' 참전유공자 훈장,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하의리 비디오 스틸, 2020
'북야천신연기' 그림, 13세기 후반 일본 가마쿠라 시대, 비디오 스틸, 2020
밭에 설치된 풍향계 또는 바람개비,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송화리, 비디오 스틸, 2020
평택에 위치한 부동산 현수막,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송화리, 비디오 스틸, 2020
'낙검자 수용소' 외관, 경기도 동두천시 소요산, 비디오 스틸, 2020
'낙검자 수용소' 내 화장실과 '영감놀이' 대사, 경기도 동두천시 소요산, 비디오 스틸, 2020
"인권 유린과 국민 보건의 사이" 신문 기사와 '영감놀이' 대사, 비디오 스틸, 2020
"인권침해 부작용 관광 접대 말썽난 접객 여성 등록증의 허실" 신문 기사, 비디오 스틸, 2020
“일본군 옛 주둔지서 대형터널 발견” 신문 기사 사진과 '페니실린' 원료 푸른곰팡이, 비디오 스틸, 2020
부영공원 내 나무, 인천광역시 부평구, 비디오 스틸, 2020
평택 주한미군 기지 확장 공사에 나온 사토,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도두리, 비디오 스틸, 2020
신문 기사 아카이브, 2020
라디오 인터뷰 아카이브, 2020
k-6 USAG Camp Humphreys, 2020
k-55 Osan AB, 2020
작업노트
할머니는 이따금 옛날얘기를 해주신다. 그건 사실 ‘들려주다’ 보다는 혼잣말에 좀 더 가깝지만, 나도 그 옆에 앉아 옛날 이야길 듣는 걸 좋아한다. 오래전 기억을 더듬는 일의 한계처럼 이야기 속 시간은 서로 뒤죽박죽일 때가 많아,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맞춰 보지만 이것도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역시 이야기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 지금은 안 계신 할아버지 얘기다. 그럴 때면 이야기는 시간순을 넘나들며 전개되는데, 나는 특정 단어들로 하나의 이야기를 기억해두곤 전후 사건과 맞게 나름 시간순으로 배치해 본다. ‘일본군’, ‘징용’, ‘탄광’, ‘총상’, ‘귀향’, ‘한국전쟁’, ‘국군’, ‘징병’, ‘인민군’. 하지만 이것들이 쓸데없는 구분과 나열이란 걸 알아채고, 이내 그것을 그만둔다. 할머니의 이야기에선 사건의 종결은 등장하지 않는다. 또다시 전개되는 사변과 이후에 뒤따라오는 연속적인 이야기들은 마침표 하나 없이 거대한 덩어리로 뭉쳐진다. 나는 앞서 나열한 단어 묶음에 평택에 위치한 작은 마을 주민들과 나눴던 대화 속 단어 몇 가지를 추가해본다. ‘왜정’, ‘빼앗긴 땅’, ‘미군정’, ‘헬기 소음’, ‘돌풍’, ‘논밭’, ‘부동산’, ‘고위 공직자’, ‘매립’, ‘오염’. 나는 이 낱말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단어를 골라 선택했고, 이내 그것이 작업의 시작이자 제목이 되었다.
오늘날 ‘영감’은 흔히 나이가 많아 중년이 지난 남성을 지칭하지만, 그 어원은 조선시대 고위 관리를 부르던 호칭으로 현대에 와서는 고위 공무원 또는 명망 있는 인사에게까지 두루 쓰인다. 여기에 더해 제주도에선 보다 넓은 의미를 가지는데, 매년 음력 2월 초하루 제주도에서는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이 열린다. 이 중에는 도깨비가 등장하는 ‘영감놀이’도 행해진다. 여기서 ‘영감’은 도깨비를 상징하는데, 제주도에서는 여자들이 병에 걸려 몸져 누우면 도깨비가 여인의 몸에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를 밝히는 도깨비가 여인의 몸으로 들어가 병을 옮기면, 이 역신을 몰아내는 치병굿의 일종인 ‘영감놀이’가 행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형들을 불러 정성껏 준비한 음식과 술을 내어 역병(동생)을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면 도깨비 형제는 만찬을 즐기고 사람들이 준비한 공물을 챙겨 동생을 데리고 떠난다. 특이한 점은 이 양면성을 가진 영감신을 사람마다 서로 달리 대하는데, 어떤 이는 집에 모시며 치성을 드리는가 하면 누군가는 경계하며 배척한다. 부신적 면모와 병귀적 속성을 동시에 가진 ‘영감’은 풍요와 제물을 가져다주거나, 역병과 재앙을 몰고 와 마음이 변하면 다시 가져간다. 하지만 올해 큰 질병의 여파로 영등굿 행사의 마지막 차례로서 이별을 고하는 송별제가 취소되었고, 이 때문인지 ‘영감’은 매번 다시 찾아오는 동시에 떠나지도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이 다의적인 속성을 가진 ‘영감’을 한국 근현대사부터 동시대까지 벌어지는 비극적인 단면에 빗대어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고 미래를 모색할지에 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